이 글은 역사적 대재난으로 알려진 리스본 대지진(1755)과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사회적 반응을 살피며, 오늘 우리 시대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적 응답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 재난, 리스본 대지진으로부터

1755년 11월 1일, 그날은 가톨릭교회의 엄숙한 축일인 만성절이었습니다. 신자들이 리스본 성당에 빈틈없이 들어찬 9시 40분, 대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하였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리스본에서만 3만에서 4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리스본은 당대 유럽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당시 리스본은 가장 기독교적인 도시로, 12세기 이후로 지어진 주교좌성당 이외에 교구성당이 40군데가 넘었고 90개의 수도원과 150곳의 수도회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전체 인구 25만 명중에서 약 10%가 수도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리스본 지진에 대한 아래의 분석은 니콜라스 시라디의 『운명의 날: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강영이 옮김 (서울: 에코의 서재, 2009), 특히 18-19, 159, 161-62, 165, 149-150, 171, 175쪽을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진이 난 이후로 리스본의 대형 교회들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 그중에서도 수많은 피해자를 낸 성당과 종교재판소의 붕괴는 거의 정교일치 사회라고 할 만한 포르투갈 사회의 종교적 신념과 권위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이 재난의 원인을 어디서 찾았을까요? 또한 교회와 사회, 당대 명망 있던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은 이 대재난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재난에 대한 해석과 응답

신앙적 관점에서
신정 일치 사회라 불릴 만큼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리스본의 대중들은 재난을 인과응보적인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사제들은 '지진은 죄악에 물든 도시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했고, 생존자들을 '꾸짖으며' 심판을 초래한 죄목을 열거했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방종, 나태, 부패, 그리고 이교적 신앙, 즉 신교도들을 묵인한 약한 신앙심'이 심판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난 인식은 신앙적 응답으로 '회개'를 요청했습니다. 악한 행실에서 벗어나고 거짓과 오류를 떠나 진리를 분간하고 진리에 매진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심과 종교적 헌신의 부족을 재난의 원인으로 꼽은 다음, '명상과 참회기도'에 매진하는 등, 내면 지향적인 태도를 강화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응답 방식은 현실도피나 반사회적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교회가 도시 복구나 사회 회복에 기여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역적으로도 멀고 신앙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던 네덜란드의 엄격한 칼뱅교도 성직자들도 리스본 지진을 신의 응징으로 해석했습니다. 다만 미신과 우상숭배, 로마 가톨릭 의식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에서 심판의 원인을 달리 봤습니다.
영국의 웨슬리는 『리스본 지진에 대한 고찰』이라는 소책자에서 신이 리스본을 심판하신 것은 잔인한 종교재판소에서 사람들을 비열하게 살해한 데 대한 응징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해석은 모두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전제하고, 재해의 원인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돌리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보았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신앙의 도시'인 리스본에 재앙이 내렸다면, 왜 '방탕한 파리'나 '탐욕스러운 런던'에는 아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은 것인가? 종말론적 심판론이나 이신론적 낙관론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불과 6살 소년이었던 괴테도 리스본 재난의 이야기를 듣고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주님'을 고백하는 사도신경과 자비로운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큰 의문을 가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계몽주의자 볼테르(1694-1778)에게 리스본 대지진은 이 세계가 아름답고 선한 세상이 전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세계는 신정론이 주장하는 조화로운 세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선 선이 악에 무너졌습니다. 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3집 (2012년 9월), 253쪽.

임마누엘 칸트(1724-1804) 역시 전통적인 신정론, 즉 재앙이나 자연재해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거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신학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신정론에 있어서 모든 철학적 시도들의 실패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신정론의 기본 전제를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칸트는 특히 신정론을 통해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칸트는 신정론이 자연악과 도덕악을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연악과 인간이 저지른 도덕적 행악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사회과학-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루소의 해석은 재난을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최초의 글로 평가됩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의 저자 루소는 "6층, 7층 건물을 2만여 채나 건축한 것은 자연이 아닙니다. 리스본 주민들이 그렇게 밀집된 지역에 살지 않고 넓은 지역에 고루 펴져 살았더라면 지진 피해는 훨씬 덜하거나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사망자 수의 사망자가 생긴 것이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래 … 자연은 인간의 법을 따르게 마련이지 않을까요? 지진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러한 루소의 주장은 사회적으로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수용되었으며 이후 지진에 대한 자연과학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진을 자연현상으로 생각함으로써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죄인이라 매도되는 사람들도 과학적 설명에 따르면 그저 자연재앙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율법주의적 종교는 죄의식을 더하지만 과학적 설명은 피해자들이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다독입니다.
또한 기도와 명상 등 종교의 울타리 안에 머물게 했던 회개하라는 부르짖음보다는 죄의식과는 상관없이 책임 있게 재건 활동에 참여하라는 호소가 더욱 대중적 설득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적 관점에서 죄와 심판을 강조하는 종교 교리가 저주와 구원이라는 수사학으로 생존자들을 움츠러들게 하였다면, 과학은 자연의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죄의식에 메여 있던 대중을 해방시켰습니다.

정치적 관점에서
정치가들은 바로 이런 해석에 주목하였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의 총리였던 카르발류와 같은 이들은 정치적 이유로 재난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성에 근거한 계몽주의가 종교적 반계몽주의를 꺾고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율법주의적 종말론과 심판론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이성적으로 지진이라는 자연현상임을 설명함으로써, 도시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정치'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정치가들은 신앙,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통찰을 선택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조차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스본 대지진 이후 나온 주장들이 모두 현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리스본에는 루소가 이야기한 7층 건물이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루소는 리스본의 건축물 구조와 리스본 지진의 파괴력에 대해 상당히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밀집되지 않거나 넓은 지역에 고루 퍼져 살았더라면 '피해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서구의 세속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성직주의도 종교 자체의 내부 모순도 원인일 수 있지만, 사회적 모순에 분노한 대중들에게 왕궁이나 군대와 금융기관들이 아닌 교회를 타도대상으로 삼도록 유도한 정치권의 노회한 정치 행위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Owen Chadwick, The Secularization of the European Mind in the 19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5), 119쪽,
이런 정치적 책동을 대중화하는 데에는 선전선동이 긴요했음은 물론입니다.

재난 시대, 사회변동에 응답하는 교회

리스본 대지진이라는 재난은 포르투갈 기독교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예수회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통속문학이 포르투갈 젊은이들의 정신을 타락시킬 것을 염려하여 라틴어로만 교육할 것을 고집했습니다. 유럽 대부분이 새로운 인본주의 사상과 종교개혁 사상을 흡수하며 급격한 변화를 겪는 동안 포르투갈은 오히려 중세 시대로 회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스본 지진은 제도적 종교의 거짓 권위를 뒤흔들고, 철학의 계몽적 낙관주의에 도전했으며, 이신론적 신학과 통속적 신앙에 궁극적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어떠합니까? 코로나19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전통 종교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악을 조장하는 이단, 공적 책무를 방기한 기독교, 전통적인 운영방식을 탈피하지 못하는 교회, 생태계의 교란을 가지고 온 탐욕적 사회, 물질주의에 함몰된 자본주의 등, 수면 아래 감춰져서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평범한 대중에게도 드러났습니다. 이에 신학자들도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 생명이라는 신학적인 주제를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제안된 '사회적 거리'를 받아들이면서, 어떤 이들은 사회적 관계와 사람들의 사이의 만남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를 물었고, 인간과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다양한 환경을 연구하고 생태계 전반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피조 세계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성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인간과 사회적 관계, 또 자연에 대한 질문들은 리스본 대지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정교해졌고, 더 복잡해졌습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말했듯,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과 사회와 바이러스를 포함한 생태계를 따로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성찰은 더 이상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회변동 시대에는, 성찰은 또 다른 성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신학과 교회는 인간과 사회, 자연을 아우르는 성찰을 통해서 새로운 실천적 응답을 모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교회의 지향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극복을 위하여, 또한 재난 극복 이후 교회의 위상과 존립을 위해서 거칠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향성을 제안해 봅니다.

(1)우리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체계에 대한 신앙을 명확하게 세워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매 형제들로서, 즉 지체로서 인류애를 굳건히 함으로써 경제적 상황과 인종과 국가를 넘어서서 연약한 지체의 생명과 기본권에 가치를 두는 생명 중심의 삶을 실천함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나라와 의, 즉 영적 가치를 토대로 사회적 공동선의 확산 실천에 더욱 힘써야 함을 뜻합니다.

(2)그러나 마스크 한 장으로 인하여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주일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느냐는 주제가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는 일상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체계에 따른 신앙적이며 사회적인 실천은 매우 이상적 주장으로 보이는 현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의 재난은 개인과 우리 사회와 세계의 민낯뿐만 아니라 교회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민낯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무지와 죄성이 악의 권세 앞에 발현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 교회의 우선 과제를 제시합니다. 코로나19와 그 이후 교회의 역할은 여전히 신앙인의 신앙인 됨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가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는 만큼 교회는 교회다워지고,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오늘의 재난은 신앙인들에게 악과 죄와 고통의 현실을 깊이 인식하게 합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러한 재난 한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시며, 고난당하는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행할 것을 도전합니다(요 9.1-7).

(3)교회와 신앙인들의 삶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함이 첫째 되는 목적이며, 이웃을 사랑함이 그와 동시에 행해져야 할 목적입니다.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그 이웃의 범위는 넓어지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게 됨과 동시에 나와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성숙해 갈수록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죄와 악으로 뒤틀린 이 세상도 여전히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신앙인으로 부르신 이유, 나와 너를 교회로 함께 존재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세상이 그 사랑을 받아들여 구원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삶으로 살아가는 만큼 우리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교회는 더욱 교회로서의 기본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의 교회 됨은 신앙인들을 더욱 신앙인다운 신앙인으로 양육함이 우선입니다!

(4)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시자 구속주이시기에 우리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사회과학과 정치와 언론 영역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영역이 죄로 인하여 뒤틀려 있음이 사실이지만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리스본 대지진 당시의 종교가 범하였던 우를 반복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철학,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언론과 정치 모두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들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어긋나는 세계관과 가치를 생산하며 반생명적 문화를 확산함은 경계하고, 경고하며 제어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사역을 교회가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는 더욱 신앙인들이 세상 안에서도 책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여야 합니다. 일반은총에 속한 여러 영역, 특히 자연과학, 사회과학, 철학, 언론, 정치 영역 등등과의 소통과 그 영역들에 대한 신앙적 해석과 응답 등이 신앙인의 신앙인 됨에 주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이 모든 영역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만인제사장, 즉 자신의 영역에서 모두가 제사장적 역할을 한다는 신앙적 각성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이른바 평신도들의 책임적 사회참여와 교회사역 사이의 역할분담과 연계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목회 방향성 및 교육과 정책결정의 구조변혁, 즉 목회의 포스트-코로나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1. 니콜라스 시라디. 『운명의 날: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강영이 옮김. 서울: 에코의 서재, 2009.
  2. 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3집 (2012년 9월): 243-280쪽.
  3. Chadwick, Owen. The Secularization of the European Mind in the 19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

장로회신학대학교 임성빈 총장

X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