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기간 : 2021년 5월 11일 ~ 12월 31일
  • 관람시간 : 10:00 ~ 12:00 / 14:00 ~ 16:00 (토, 주, 공휴일 휴관)
  • 관람인원 : 회차당 12명 이내 입장제한
  • 전시장소 : 마포삼열기념관 2층 전시실 및 3층 로비
  • 예약문의 : 10명 이상 단체는 예약 (02-450-0783)
  • 관람료 : 무료

개교 120주년 기념 전시회 인사말

그때, 그분들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기억하며...

1901년 평양주재 미국북장로회 선교사이며 장대현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마포삼열의 집에서 시작된 신학교육이 올해 12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장로회공의회의 관리감독으로 시작된 신학교육은 교회연합과 사경회의 전통에 기초해 있었고 그 이후 다양한 명칭과 발전과정을 거쳐 오늘의 장로회신학대학교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번 개교 120주년 기념 전시회는 평양에서 시작된 신학교육의 여명기를 조명합니다. 마포 삼열을 통하여 뿌려진 신학교육의 씨가 초기 10년간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지 본교의 소장 자료와 유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본 전시회에서는 먼저 평양에서 시작된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신학교육 120년 역사를 연대표로 정리하여 장신대가 그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와 기독교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교회 지도자 교육이 절실하게 요청되었고, 그 결과 신학교육이 시작된 배경과 당시의 조사, 영수, 전도부인, 권서, 사경회, 신학교육에 대한 장로교공의회 결정 등이 이번 전시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사항은 우리가 그동안 잘 접하지 못했던 당시의 평양신학교 교수와 신학생들의 면모, 그리고 학제, 교과목, 교재, 공의회 회의록 등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관련 사진, 서류, 유품, 회의록, 교육과정, 신학 교과서 등을 통하여 신학교육 여명기에 활동했던 그때, 그분들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느껴보시고, 이를 통하여 오늘의 신학교육을 새롭게 성찰하고 개혁해 나가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 전시회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지원해 주신 총장직무대행 김운용 교수님과, 지난 수 개월 동안의 자문으로 수고해 주신 임희국, 안교성, 변창욱 교수님, 실무를 맡아 수고해 주신 학예사 신상현 목사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역사박물관장 장신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장 6~7절

전시개요

장로회신학대학교가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120년 역사 동안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진들은 신실함으로 복음의 씨를 심고 물을 주었으며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 장로회신학대학교 1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시 《장로회신학대학교 120년의 여명 :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선교 여명기의 사경회로부터 7명의 목사를 배출하고 총회가 시작될 때까지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초석이 되었던 사람들의 응답을 조명한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신앙의 열망’은 한국선교 초기 사경회와 토착 일꾼들의 활약으로 단기간 엄청난 양적 부흥을 이룬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신학반에서 조선장로회신학교까지’이다. 1901년 김종섭, 방기창 두 명의 학생으로 모인 ‘신학반’부터 1907년까지의 학제와 교과목, 학생과 교수진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세 번째 이야기 ‘그때, 그 사람들의 흔적’은 한국의 복음여명기를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낸 그때, 그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과 유품으로 소개한다. 이 전시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응답을 성찰하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신앙의 열망’

1880년대 만주에서 번역된 한글성경과 전도문서들은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한국인들에게 신앙을 갖게 했다. 그리고, 1890년 선교사와 함께 처음으로 모인 사경회는 흥행과 함께 한국인 지도자들을 배출하기 시작한다. 성경과 전도문서의 보급에 권서, 전도부인의 활약이 컸으며, 조사(Helper)와 개교회를 돌본 영수의 헌신이 있었다. 그 열매로 한국교회는 1888년 전국에 단 2곳뿐이던 예배당이 1901년에는 52곳으로 늘었고, 1904년에는 교인 수가 3만 명에 이르는 큰 부흥을 맞이하여 한국인 목회자 배출을 열망하게 된다.

‘신학반에서 조선장로회신학교까지’

1900년, 평양공의회는 조사요 장로였던 김종섭과 방기창을 문답하고 목회자후보생으로 허입한다. 그리고 마침내 1901년 마포삼열의 집에서 신학반이 시작되었다. 1903년에 양전백,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가 허입되어 학생이 6명으로 늘었고, 그해 가을 장로회공의회에서 3개년 예비과정(조사를 위한 과정)과 5개년 본과과정(신학반)의 학제가 채택된다.
1907년에는 신학반에 4개 학년이 있었고 학생 수도 총 76명으로 늘었다. 4개 장로회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교수로 섬겼고, 6월 첫 졸업생 7명이 배출되어 목사로 장립된다. 이에 1907년 ‘신학반’이라 부르기를 그쳤고, ‘대한장로회신학교’라는 이름이 사용되다가 ‘조선장로회신학교’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1912년 본교 강당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때 그 사람들의 흔적’

여명기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초석이 되었던 일꾼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응답은 그 삶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1회부터 5회 졸업생의 명단과 면면, 그리고 그때, 그 사람들의 삶의 자리가 담긴 유물들을 만나본다.